발끝을 문에 부딪치면, 발을 동동 구를 만큼 아픈 생각이 들고,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뭔가 이빨에서 시린 듯한 통증을 느끼고, 왠지 위가 쓰리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성 위염이었다는 등...우리는 매일의 생활속에서 신체에 자주 '아픔(통증)을 느끼곤 한다.
아픔이라는 감각은 오감으로 말하자면 촉각의 하나겠지만, 보통은 '통각' 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프다는 것은 대체로 불쾌한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아픔이 없다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신경통이나 두통을 완화시키는 약이 계속해서 발매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아픔' 이라는 감각은 우리의 신체엔 필요없는 것, 몰아내야 할 것으로 치부되는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아픔이라는 녀석을 인간의 신체로부터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아픔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감각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픔이란 감각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
실은, 그런 사람들 - 뜨겁다, 차갑다, 아프다 등의 피부감각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 이는 무통증이라는 선천성 질환이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니, 무적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왠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내를 알면 그런 생각은 아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질환을 가진 사람은 항상 생명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가령, 자신의 신체에 상처가 생기더라도 아프다는 감각이 없다. 모르고 내버려 두었다가 그 상처라 곪아버리기도 한다.
오이와 같은 채소를 썰 때도 매우 위험하다.
분명하게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감각을 빌미로 어느 정도 썰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심코 너무 썰어버리거나 해서 살을 베는 것도 모른채 피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너무 썰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스토브에 닿아도 그 뜨거움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화상을 입을 수 있지만, 그것조차 느끼지 못한다.
신체 내 내장의 통증도 못 느껴서 맹장에 걸려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발견이 늦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컨테 아픔이라는 것은 우리 몸이 다치거나, 상태가 나쁘거나 몸에 무리가 간다거나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기능이 결핍되는 것은, 까딱 잘못하면 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게 되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픔을 알지 못하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
우리는 보통 팔을 강하게 잡으면 아프다는 것을 안다.
맞으면 아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좀 더 강하게 맞으면 그만큼 더 아프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감각에 대한 지식은 자기 자신이 아프다는 경험을 한 뒤 비로소 몸에 배는 것이다.
쓰다듬을 때와 비빌 때, 툭 칠 때와 때릴 때 힘의 강도에 따라 아픔이 어떻게 다른지는 우리 신체로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픔이란 감각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하면 얼마만큼 아픈지를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그 힘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다.
애정 표현을 한답시고 손을 꾹 쥐면, 너무 강해서 상대방의 손목에 멍이 든다.
장난삼아 상대의 팔을 잡아당기면 팔을 접질리게 한다.
장난삼아 옆구리를 때리면 갈빗대가 나갈지도 모른다. 이런 만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무릇 감각이 없다면, 경험의 축적도 없는 것이다.
아픔이라는 감각이 우리들에게 천성적으로 갖추어진 것은, 환경 안에서 문제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각의 기능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