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한다
점심시간에 빌딩가를 걷다 보면 요즘은 목에 이름이나 사진을 넣은 사원증을 달고 다니는 사람을 흔히 보게 된다.
서울의 시청이나 강남 등에 가면 그곳의 직원 역시 명찰을 달고 있다.
사무실 등에 전화를 걸면, 네 OO 회사 XX 담당 김철수 입니다. 라고 회사 이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까지 대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되었다.
요즘은 회사와 같은 집단 속에서도 개개인을 분명히 표시한다.
이는 물론 사원 한 사람 한사람의 책임감 있는 개인으로서의 자각을 촉구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기의 이름을 주위에서 알 수 있도록 하거나, 이름을 댐으로써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이 재차 자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주위에 아무도 없다든가, 거꾸로 많은 사람에 둘러 싸이는 상황에서 무책임한 행동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쓰리기를 버리고, 백화점 바겐세일 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외양을 신경 쓰지 않고 행동을 하는 것 등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태도 이다.
월드컵 때 문제가 되었던 훌리건이나, 자기가 응원했던 팀이 경기에 지면 운동장에 뛰어드는 야구팬들도 이와 같은 것이다.
반대로 친구와 함께 행동한다거나, 명찰을 붙이고 행동할 때는 무책임하게 행동하지 않게 된다.
왜 이와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일까?
이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 자기가 자기를 모니터 하는 눈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가 누구인지 주위에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는 자기 일에 대한 책임은 틀림없이 스스로에게 돌릴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태도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므로 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 묻히거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면, 무엇을 하든 누구의 책임인지 알기 어렵게 되고, 누군가로부터 책임을 묻게 될 걱정도 없다.
이 때문에 자각이 약해지고, 무심코 무책임한 행동을 취하기 쉬운 것이다.
대학의 학생 식당에서 식기 정리를 관찰하면, 식당이 혼잡할 때일수록 식기를 정리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대충 정리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혼잡 정도에 따라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친구 2명 또는 3명과 함께 학생 식당에 온 학생은 식당이 아무리 혼잡하더라도 정리를 깨끗이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친구가 있기 때문에 공적인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받음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 있고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향이다.
이것은 심리학의 실험에서도 확인되었다.
학습 장면을 설정하고, 문제의 답을 틀린 학생에게 전기충력을 주도록 실험 참가자에게 지시한다.
그 결과, 평소의 복장으로 명찰을 단 참가자 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천으로 완전히 치장한 익명상태의 참가자 쪽이 더 강한 전기충격을 준것이다.
물론 누구나가 반드시 익명적인 상태가 되면 일탈 행동을 취하기 쉬어 진다는 말이 아니다.
개중에는 어떤 상태에 처하더라도 자신의 이성으로 확고하게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상황이나 장면에 따라 흔들리기 쉬운 사람일 수록 익명 상태에서 일탈 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